베트남 여행기를 쓰기 전 혹시 지금도 베트남에서 여권을 분실하여 좌절, 당혹해 할 영혼들을 위해 따끈한 후기를 먼저 작성한다.

여행지는 베트남 하노이. 나의 여행 메이트가 무려 여행 첫날 여권 분실을 하게 됐다.
인터넷에 많은 후기들이 있었지만 우리가 경험한 걸 정리해 본다.
우선 총 3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1. 관할 파출소 분실 신고 : 분실 당일(14일 금요일)

이때 무조건 베트남 통역(번역) 할 수 있는 현지인이 필요하다. 처음엔 영사관에 연락을 했지만 직접적인 통역을 지원해 주지 않고, 통역사 리스트를 전달해 주는 정도였다. 그래서 그냥 호텔 프런트에 부탁을 했다.
다행히 이런 일이 많았는지, 호텔 직원이 직접 관할 파출소도 확인, 동행, 통역, 분실 신고서 작성까지 도와줬다.
직원 업무 일정에 맞춰서 우리는 여권 분실 다음날 파출소에 갔는데, 여권 분실 신고서 작성부터 파출소장 직인 날인을 받는 것까지 4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소장이 자리에 없어서 기다리다 보니 오래 걸린 것이었음)
여기서 한 가지 팁은
잃어버린 시간, 장소, 가방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미리 잘 정리해둬야 한다. 여권 사본이나 사진도 미리 백업해둬야 하고. (여권 번호 적어야 하기 때문)
그리고 호텔 직원 말로는 도둑이나 소매치기당했다고 하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으니 그냥 잃어버렸다고 하는 것이 낫다고 했다.
이 단계에서는 혼자 하려 하지 말고 무조건 현지인 동행이 필수인 것 같다. 통역사 구하는 것보다는 그냥 호텔 직원에게 부탁하는 게 제일 빠르고 편한 것 같다. 호텔 직원은 무료로 도와주긴 했지만, 여행 메이트는 너무 고마워서 소정의 수고비를 지급했다.
2. 대사관 여행증명서 혹은 임시여권발급+서류 (17일 월요일)
금요일에 여권을 분실한 관계로 대사관에는 월요일에 가야 했다. 그래서 일단 주말은 놀고 ㅎ. 대사관 업무 시간인 오전 9시에 맞춰 아침 일찍 이동했다.
대사관 입구에서 이름, 여권번호, 전화번호 작성 후 입장하면 맨 안쪽 창구에 임시여권과 여행증명서 발급하는 창구가 있다. 번호표 받아서 기다렸다 발급 신청서, 여권분실신고서(파출서 발급), 여권 사진 2장을 제출하면 되는데, 시일이 촉박한 경우에는 여행증명서를 신청하는 것이 빠르고 좋다. 우리는 오전 9시 좀 넘어서 신청해서 당일 오후 2시에 발급받았다. 발급비용은 25달러였는데, 달러로 계산해야 하기 때문에 미리 환전해야 한다. 대사관 안에 ATM 기기도 있고, 베트남 동과 달러 환전을 해주는 창구가 있으니 거길 이용해도 된다.
여기까지는 무난하다. 하지만 마지막이 문제다.
3. 하노이 출입국관리사무소 출국비자 신청 (18일 화요일)
여행증명서나 긴급여권을 발급받았기 때문에, 기존 여권번호는 사용을 할 수 없다. 따라서 베트남 입국비자도 새롭게 받아야 나중에 출국을 할 수 있다. 이 비자(출국비자)를 받기 위해 하노이 출입국관리 사무소를 찾아야 하는데, 이걸 대사관 업무와 함께 처리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일단 하노이 출입국 관리 사무소가 여러 곳이 있는데, 이 출국비자를 받을 수 있는 곳은
44P.Tran Phu Dien Bien Ba Dinh Ha Noi
꼭 저 주소로 가야 한다. 
대사관에 갔다가 당일(17일) 오후 3시경 도착했더니 이미 번호표가 마감되어 접수를 할 수 없었다.(중간에 내가 다른 출입국 사무소로 가는 삽질을 한 관계로 시간이 더 늦어짐 ㅠ)
담당 공무원 말로는 오전 7시부터 번호표를 나눠준다고 했다. (업무는 8시 시작)
그래서 다음날(18일) 일찍 갔는데, 이미 앞에는 3~40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아마도 오전 7시 전부터 와 있던 사람들인 듯;
다행히 일찍 간 덕에 9시 전에 접수를 했다.
접수서류는 : 여권분실신고서(파출소 발급), 여행증명서 혹은 긴급여권+서류(여행증명서와 함께 서류 발급해주는데 베트남어라 정확히는 모르겠음, 대사관 발급). 이때 비행기 티켓을 프린트 해 가는 것이 좋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업무일 기준 5일 이후에 오라는 것이다. 이 비자 처리 일정은 공식으로 5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 주를 하노이에서 더 보내야 했다. 이런 사례를 이미 많이 들어봤던 지라 항공 티켓(19일 수요일 출발)을 보여주면서 내일 출국이라고 어필했지만 "항공권 일정을 바꿔"라는 단호한 대답이 돌아왔다.
여기서 여행 메이트 좌절. 일단 카페에 가서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답답한 마음에 하노이 한인회에 전화를 해봤더니 뒷돈 주고 긴급 비자를 받는 경우도 있다고 듣긴 했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 직접 주면 그들도 굉장히 자존심 상해하기 때문에 베트남 사람을 통해서 해야 할 거라고 조언해 주셨다. 하다 안되면 정말 베트남 사람 구해서 뒷돈이라도 줘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런데 이 방법은 안 쓰는 게 나을 것 같긴 했다. 서류 복사해 주는 가게에 들러서 혹시나 (뒷돈이라고 안 하고) "비자를 빨리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들었다.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no way'라는 대답이 돌아왔다.(약간 기분 나빠 보였음) 그렇다. 베트남도 이미 많이 변하고 있고, 이런 방식은 상대방에게 굉장히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뒷돈을 사용하는 방법은 포기하기로 하고, 번호표를 오전 11시에 다시 한번 더 나눠준다고 들었기 때문에, 번호표를 다시 받아서 한 번 더 졸라보기로 했다.
여행 메이트는 다시 힘을 내 번호표를 받으러 갔고, 혹시 몰라 창구에 다른 분에게 접수증을 보여주면서 내일 무조건 출국해야 한다고 하소연을 했다. 그랬더니!! 이런 기적 같은! 비행기 e 티켓을 보여달라고 하더니, 일단 접수비(금액은 기억이 안 남;;)부터 내고 비행기 e 티켓을 프린트해서 오라고 했다. 세상에!! 정말요???
이때 친구가 베트남 말을 전혀 못하니까 '혹시 누구 통역해 줄 사람 없냐'고, 창구 직원이 물어보니 한 베트남 여성께서 나서서 통역을 도와주셨다고 한다. 세상에 너무나 고마워라.
부랴부랴 비행기 티켓 프린트하고 접수 수수료 내고 다시 창구를 찾았더니 다음날 오후 3시 이후에 오라고 했다. 대박!! 이때도 다른 누군가가 나서서 통역을 해주셨다. 베트남 사람들 넘 친절하다 ㅠㅠ
그리고 출국 당일 (19일 수요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시 출입국 사무소를 찾았고, 오후 3시부터 담당자 근무가 시작인 듯했다. 담당자가 자리에 오더니 친구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접수증을 가지고 여행 증명서를 뒤적거리더니 11번 창구로 가서 받아 가라고 했다. 오 대박!!! 그렇게 여행증명서에 비자 도장이 쾅 찍히고, 우리는 그날 밤 비행기를 타고 무사히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여권 분실 관련 많은 경험담 중 가장 문제가 바로 저 출국비자를 받는 단계일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무조건 5일 걸리는 업무이기 때문이다. 현재 대사관에서도 베트남 정부와 일정을 단축시키는 것을 계속 논의 중이라고 한다.
근데 우리가 이번에 경험하고 낸 결론은 뒷돈 같은 이상한 경험담에 혹하지 말고, 서류 접수할 때 비행기 티켓도 꼭 프린트해가고, 출국 일정이 빠듯한데 혹시라도 5일 뒤에 오라고 하면 자신의 비행기 일정을 보여주면서 어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래도 안된다고 하면 포기하지 말고 더 사정해 보기 권한다.
우리가 운이 좋았던 것 일 수도 있긴 하지만 베트남 공무원 중에서도 융통성 있는 사람들도 분명 있으니 편견을 갖지 말고 시도를 해보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여권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 특히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 근처에는 소매치기도 많다고 하니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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