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이후 확실히 극장을 덜 가게 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집에 TV를 55인치로 바꾸고 나서.
영화값 인상도 한 몫한 것 같고.
최근에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슬램덩크' '카운트' 정도밖에 없다. 둘 다 재밌게 봤고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았지만 후기를 남길정도로 깊은 인상을 주진 않았다. 
그런데 우연히 발견한 이 영화 '6번 칸(Compartment No.6)'은 영화 보는 내내 묘한 감정들이 교차해서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 영화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이 봤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꽂혀서.
원래 내 여행 버킷 리스트 중 가장 최종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인데, 작금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로 산산 조각이 나버렸다. 아마도 내 생전에는 불가능하겠지? 그렇게 실망하고 있는 나에게 이 영화는 영화의 공간만으로도 봐야 할 이유로 충분했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이게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라고? 의문이 들 정도로 옛날 영화 같다. 막 냉전시대 이후, 러시아 개방 직후 쯤?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은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스타 배우들에 질려서 요즘 영화보기가 싫었던 것일 수도), 대단한 미녀도 미남도 아니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영화에 빠져든 거 같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이 영화에 더 몰입하게 된 건 아마도 남자 배우가 한 몫했지 싶다. 초반엔 혹시라도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저런 사람 만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편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순수한 그 모습이 좋았다.

영화 초반 초딩 남자애들이 관심 있는 여자애한테 짓궂게 구는듯한 행동이나 핀란드인인 여자주인공인 다른 핀란드인 남성과 핀란드어로 얘기하는 모습에 삐지는 장면, 기차가 무르만스크 역에 도착기 전 여주와 마지막 만찬을 하기로 하고 좋은 술을 마시기 위해 자기의 시계를 열차 직원에게 넘기던 것, 여자 주인공이 자신의 모습을 그려달라는 말에 그림을 그리다가 포기하는 모습 (이건 아마도 여주가 자신이 외로운 건 자신을 바라봐 주던 (바람난 듯한 여자 친구) 눈빛이 그리워서라는 말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와 포옹을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던 모습과 여주인공이 무르만스크에서 여행의 목적인 암각화를 못 보게 되자 궂은 날씨에도 함께 보러 가고, 그 후 함께 눈싸움을 하는 장면까지.

격정적이지도 성적인 자극을 추구하지도 않는 두 남녀의 로맨스는, 단순 로맨스라고 하기보다는 어린 시절 함께 뛰놀던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보는 듯 했다. 그만큼 순수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서양 영화에서 나오는 남자주인공들 특유의 느끼한 태도와 멘트, 눈빛을 마구 발사하는 그런 모습이 없어서 그랬나.

이 장면은 좀 갸웃. 할머니가 "여자는 영리해. 여자의 내면에는 작은 동물이 사는데, 그 동물의 말을 잘 따라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믿어라"라는 괜찮은 멘트를 하지만 먼가 이 멘트를 살리기 위해 만든 장면 같은 ㅎㅎ"

상업영화에 클리셰처럼 등장하는 장면들이 아니어서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 것 같고.
내가 또 안 예쁜 여배우를 안 좋아하는데 ㅎㅎ 이 여배우는 외모도 그렇고 몸매도 일반적인 여배우의 외모는 아니었다. 키도 남주와 거의 비슷하고.
그런데도 충분히 로맨틱했고 2시간의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졌으며, 또 보고 싶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자배우 유리 보리소프. 아주 매력적이다. 근데 92년생이라네? 난 30대 후반은 되는 줄 ㅋㅋㅋㅋ
몰랐는데 찾아보니 이 영화가 '45회 예테보리국제영화제(국제비평가협회(FIRPESCI)상, 드래곤상 최우수 연기상)'이라는 이력을 갖고 있었다. 그래 상업적인 영화는 아니었다.
지난 10여 년간 개인적으로 상업영화만 추구해왔는데, 다시 예술영화로 취향이 돌아가고 있는 걸까.
아주 오랜만에 깊은 감정(감동 말고)을 자극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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