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가 되고,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특히 조카들에게는 알 수 없는 부채의식이 생겼다. 항상 주는 쪽이었음에도.

친구들이 조카에게 선물하느라 돈을 많이 썼다느니, 어딜 놀러가서 주말이 쉬질 못했다느니 등등 자랑아닌 자랑을 늘어 놓으면 내가 참 정없는 이모인가 라는 생각도 종종하고 했다.

그러다 이렇게 여유롭게 명절을 보내는 것도 대학생 이후 처음이고, 마침 언니네도 첫째가 고등학생이라 학교에 빠지기 쉽지 않다며(중학교때까지 그리 쉽게 빠졌다는 것이 더 놀랍지만 ㅎ) 이번에는 시댁에 안 간다고 하여 애들 밥이나 챙겨주자 생각하며 이런 저런 음식들을 했다.

그러다가 사달이 났다. 중식도로 버섯을 썰다 손가락도 포를 뜬 거다. 피가 철철 나는데. 칼에 베인 적이 종종 있지만 이렇게 철철 나서 지혈이 안되는 것은 처음이었다. 짜증이 나진 않았는데, 아니다 짜증이 났다. 아파서. 참 묘한 기분이다.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행위가 나한테 상처를 준다는 것.

며칠이 지나 상처가 아물고 허물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지저분하기 그지 없었다. 뱀처럼 깔끔하게 통으로 탈피하면 좋으련만 군데군데 지저분하게 새 살과 허물이 어우러져 누구 보여주기 싫은 손가락이 되었다.

그러고 잊고 살았는데, 오늘 다친 손가락이 너무 맨질맨질해서 살펴보니 팽팽하다. 반대편 손가락과 비교해보니 다른 손가락은 주름도 깊고 탄력도 떨어진다. 

맨질맨질하고 새롭다 못해 붉기까지 한 새 살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막 좋지는 않고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다른 부위들은 여전히 주름이 더 깊고 탄력이 없어서 부조화를 이루는 느낌이다.

다른 살들이 통으로 탈피할 수 없으니 새로운 살이 늙어가길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건가. 새로움은 늙어갈 수 있지만 늙음을 새로워질 수 없다는 자연의 진리인 것인가! ㅋㅋ

내 몸에 젊음이 새로움이 나타났다는 게 어색해질 줄이야 ㅎㅎ

상처가 없으면 새로워질 수 없는 건가. 왜 아파봐야만 새로워질 수 있는 건가. 피곤하다 인간의 삶. 아프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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