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두에서의 셋째 날이 밝았다. 이 날은 고대하던 어메이산(峨眉山) - 우리나라에는 아미산으로 더 유명한 - 에 가는 날이다!

숙소를 여기 청두동역 근처로 잡은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의 기차역은 우리나라 기차역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플랫폼만 40여 개는 되는 거 같고, 거의 김포공항 수준의 크기인 듯하다. 특히 첫날 버스에서 내렸을 때 지하의 버스와 택시가 줄지어 있는 거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중국은 정말 땅도 넓고 인간도 많고. 土地太大,人也太多。

중국의 기차 게이트. 중국은 외국인들에게 불편한 점이 많지만, 한편으론 외국인이라 편한 점도 많다. 기차 플랫폼 입장할 때 중국인들은 신분증을 찍고 들어가는데 줄이 겁나 길어서 한참 기다려야 하는 반면, 외국인은 시스템이 작동 안돼서 人工코너에서 역무원에게 여권을 보여주고 입장하면 된다. 그리고 이 人工창구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바로 입장 가능하다. 다른 불편한 점들에 비하면 소박한 편한 점이지만 아무튼 편하다 ㅋ

처음 타보는 중국 고속철.

아침 기차라 식사를 못했기 때문에 기차역에서 대충 빵과 오트밀 음료를 샀다. 7시 30분 기차였나? 그랬던 거 같은데, 문을 연 가게가 없어서 샀더니만 영 맛이 없더라. 에잉.

1시간 좀 넘게 걸려 어메이산역에 도착. 중국인들은 대부분 앱을 통해 입장표를 구입하지만 외국인인 나는 창구를 이용해서 구입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과 달리 현금도 잘 받아주고 위챗이 없어도 전혀 문제없이 당일 표를 구할 수 있었다. 비수기에 평일이라 가능했던 걸까?

어메이산 입장권과 보현보살이 계신 금정(金顶)까지 갔다오는 왕복 케이블, 어메이산을 도는 관광버스 등을 포함해 총 370위안. 약 7만 4천 원 정도  ㅎㄷㄷ. 중국의 5A급 풍경구들은 정말 입장료가 자비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렇게 돈 많이 받고 잘 관리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중국은 인구가 많으니 가능한 거다.라는 생각이 중국 여행 올 때마다 돌고 도는 생각 ㅋㅋ

자. 버스를 타고 가볼까. 우선 레이동핑(雷洞坪)까지 버스를 타고 간 다음, 거기서 좀 더 걸어 케이블카를 타고 가야한다. 

버스 타고 우거진 어메이산을 올라올라 

레이동핑에 도착하니 완전 다른 세계. 아니 뭐 볼 수는 있는 거야? 참고로 기차역에서 레이동핑까지 1시간 반 걸린 듯. 아놔 청두 시내에서 어메이산 역에 온 시간보다 더 걸린 거냐? 후..

자 다시 케이블카 타러 가보자고. 갈 길이 멀다.

운무가 장난 아니었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운치 있었다. 커피도 한 잔 마시면서 걸으니 넘나 좋은 거. 앞은 안 보이지만 ㅋ

십 분정도 걸어 올라오니 케이블카 타는 곳에 도착. 원래는 레이동핑부터 정상인 금정까지 함 걸어가 볼까 고민도 했는데, 안 그러길 잘했다.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산이다 보니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서, 금정까지는 무리겠다 싶었다.

100명이 꽉꽉 들어 찬 케이블카 안. 처음에 100명이라는 소리 듣고 설마 했는데, 정말 100명 태우는 거 같아... 그래도 장가계처럼 오래타고 가지 않아서 탈 만 했다.

화성세계? 맞나? 모르겠다. 

오 저 멀리 보현보살이 보인다. 그리고 운무가 사라지고 있다! 오예

어메이산 십방보현상(峨眉山 十方普贤像) 크흐.... 내가 다큐멘터리에서 이 장면을 보고 꼭 여길 와야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가이드 없이 나 홀로 기차 타고 오다니! 나의 중국어 공부가 헛되지 않았구나.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 각도에서는 진짜 위엄이 느껴진다.

위에 작렬하는 태양 아래 빛나는 보현보살을 보고 있자니 현실인듯 아닌 듯하다.

운무가 껴서 더욱 신비로워 보이는 금정화장사(金顶华藏寺). 올라올 때 문에 쓰여 있던 현판 글씨가 화장세계였구나. ㅎㅎㅎ 검색해 보니 화엄경에 나오는 구절 같은데. 그 이상은 어렵다...

멋진 금정화장사와 십방보현상을 한 번에.

정상에 올라와서 안 사실인데, 이 십방보현상과 금정화장사는 2005년에 준공했다고 한다. 그동안 내전에 문화혁명 등으로 방치되어 있던 화장사를 2003년 중건계획을 세워서 2006년에 완공됐다고 한다. 어쩐지 새 거 새 거 하다 했다.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됐지만 너무 멋지게 잘 만들어서 준공 시기는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창 관람을 하고 나니 운무가 다시 보현보살을 감춰버렸다. 수시로 변하는 산꼭대기의 기후. 하지만 나는 보현보살님이 나를 반겨주시느라 잠깐 나왔다 사라지셨다고 맘대로 생각함 ㅋㅋ 나는 복 받은 자니라!

아침도 제대로 못 먹고(빵은 맛없어서 거의 안 먹음) 공복인 상태에서 오후 2시까지 산 정상에 오른 터라(그래봐야 버스 타고 케이블 타고 온 주제에 ㅋㅋ) 근처 식당에서 라면을 먹기로 했다. 산에서 먹는 라면이 지대루지. 할아버지와 손녀가 함께 일하는 모습이 뭔가 찡하고 따뜻했던 기억.

내려오는 길에 만난 오체투지 중이신 비구니들. 어메이산이 중국 4대 불교 성지인지라 많은 스님들을 볼 수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으스스하면서도 운치 있는 숲 속을 지나는데,

오 원숭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더 진상이더라. 관광객 여럿이 원숭이 부르는데 겁나 시끄러웠음. 원숭이도 고생이다.

버스 타고 내려오는 길에 지난 어메이산 주차장 입구인데, 경치가 꽤 좋다. 상당히 높은 산인데도 포근한 이 느낌 뭐지?

어메이산역. 돌아가는 기차표를 미리 사지 않았는데 혹시나 현장에서 가장 빠른 기차 티켓을 살 수 있을까 하고 와 봤으나 없었다..ㅠ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때우기 위해 다시 어메이산으로 고고.

보국사(报国寺). 이미 금정화장사를 갔던 관계로 굳이 또 절을 갈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스킵한 곳인데, 결국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냥 가려한 제 잘못이지요.

꽤 멋졌던 보국사 내부.

해가 지는 보국사를 뒤로 하고 (꽤 멋진데), 어메이산 입구 쪽으로 걷다 보니

어메이산임을 알리는 글씨가 새겨진 곳을 발견. 여기가 입구긴 한가 보다.

그 맞은편에는

부처님의 장자라 불리는 보현보살의 이야기를 거대한 벽에 새겨놨는데, 스케일이며 엄청 웅장하다.

날라리 불교신자인 나는 보현보살이 어떤 분인지 잘 몰랐는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잘 행하신 분이라고 한다. 아마도 나도 이제 생각만 하지 말고 실행에 옮기라는 뜻으로 보현보살을 뵙게 된 건가 싶었다.

보국사 근처에는 관광지답게 음식거리가 있었는데, 어차피 맛집 찾기는 힘들 것 같아서 대충 아무 곳이나 들어갔다.

늘 그 맛이 궁금했던 라로우(腊肉)를 죽순과 함께 볶은 것이 있길래 点菜. 오 그리고 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보현채(普贤菜)라는 것이 있어서 함께 주문!

중국 음식 다큐에 자주 등장하는 라로우는 생각보다 훈제향이 강했고 짭짤하니 완전 맥주 안주로 딱이었다. 아쉬운 것 껍데기 부분이 꽤 질겼던 것. 보현채는 많이 먹어 본 나물같은데, 암튼 완전 맛있어서 엄청 배불렀는데도 거의 다 먹었다.

그리고 늘 어마무시한 중국의 쌀밥 ㅋㅋ

든든하게 밥을 먹고, 중국의 스벅이라 할 수 있는 루이씽 커피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 택시를 기다렸다. 마오타이주를 넣은 커피도 팔던데 호기심에 시도해보려 했지만 참았다. 알코올은 참는 중이거든.

택시는 보국사를 갈 때 탔던 택시기사를 다시 불렀는데, 꽤 친절하고 한국에도 관심이 많았다. 택시비로 낼 잔 돈이 없었는데, 한국 돈으로 달라고 해서 1천 원짜리를 줬다. 마침 새 지폐가 있어서 나도 기분 좋게 주고, 그 젊은 택시기사도 기분 좋게 받았다. 

이 동네의 특산요리가 카오야인데 약간 달달한 맛이 나는 것이라고 했다. 다른 곳에서는 못 하고 여기서만 살 수 있다고. 자기가 맛집 안다고 했는데, 안타깝게도 배가 불러서 포기 ㅠ

십방보현상도 맑은 하늘 아래 보고 친절한 택시 기사도 만나도 아주 즐거운 여행 속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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