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면서 로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같은 나라지만 지역적으로 미세하게 다른 생각의 차이를 알게 되는 것도 재밌는 일이다. 

화과자 클래스에서 향일암에 간다는 얘기를 하니까 쌤은 꽤 멀지 않냐고 살짝 놀란 눈치다. 카카오 맵으로 보니까 빠르면 한 시간도 안 걸리겠어서 그 정도면 갈만하지 않냐고 했더니, 여수 사람들은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곳은 먼 곳이라고 생각해서 날을 잡고 간다고. 서울 사람들은 그 정도 거리는 부담 느끼지 않는 것 같다고. 서울에서는 출퇴근도 기본 한 시간 정도 걸리니까 크게 부담 없다고 느끼는데, 여수는 사흘밖에 안 있었지만 어디든 금방 금방 가서 꽤 먼 거리로 느끼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더라. 새삼 서울이 얼마나 큰 도시인지(면적으로) 다시 한번 느끼게 됐다. 하긴 예전이었으면 내가 사는 양천구나 지금의 강남구나 다 서울이 아니었으니까 ㅎㅎ
여수사람에게는 먼, 서울 사람에게는 시내 나가는 정도인, 약 한 시간 거리의 향일암에 버스를 타고 갔다. 가는 길 중간중간 바다도 보이고 산도 보이고 돌산대교도 지나고 했는데, 어쩜 사진을 하나도 안 찍었네? ㅎㅎ 쌤이 추천해 준 방죽포는 돌아오는 길에 들리려고 했는데, 버스 시간을 잘 모르겠어서 포기.

 

 

향일암 근처에 도착한 후 일단 허기를 다스리기 위해 밥 집에 갔다. 백암식당? 이었던 것 같은데, 게장백반정식과 갓김치백반정식 중에 아무래도 여수 돌산 갓김치가 유명하니까 갓김치백반정식으로 주문. 순간 착각해서 갓김치로 만든 김치찌개인 줄 알았는데, 된장찌개였다. ㅎㅎ 여수가 바닷가라 그런지 게 한 마리가 퐁당 들어가 있고, 갓김치, 볶은 갓김치, 물갓김치가 함께 나왔다.

맛은 머..쏘쏘.

 

 

밥맛보다는 경치 맛집일세. 식당에서 찍은 사진인데, 조오타~~ 이제 향일암으로!

 

 

잊고 있었는데, 맞다! 등용문이 있었다. 시험 결과 잘 나오게, 새로운 회사 입사 등등 잘 풀리게 해 주세요. 소원 빌면서 여의주 쓰다듬어주고 다시 고고!

 

 

올라가는 길에 본 향일암 근처의 일출 명소. 실제보다 사진이 더 잘 나왔다. 저 푸른 바다... 역시 바다는 남해바다야!

 

 

드디어 도착. 해탈문.

 

 

헙... 좁다... 실제론 그렇게 좁다는 느낌은 안 드는데, 사진으로 찍으니 엄청 좁게 느껴진다.

 

 

오늘의 목적지인 관음전. 향일암은 원통보전보다는 관음전이 인기가 많은 것 같다. 특히 엄마들에게. 뭔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불교 공부를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안 해가지고 잘 모르겠다.ㅋㅋ 우리 집과 언니네 입춘기도, 정초기도, 산신기도, 삼재풀이 등등 기도 붙이고. 관음보살님께 따로 연등초 올리고 시주하고 소원을 빌었다. 욕심이 많아서 여기 말고도 원통보전, 천수관음전 등등 할 수 있는 데는 다 시주하고 기도했다며 ㅎㅎ 이 정도면 하나는 들어주시겠지? 무슨 소원을 들어주실지 몰라서 다 빌어 봤어요! :)

 

 

원효대사 좌선대. 그 시절 어찌 여기까지 와서 참선을 하셨을까? 심지어 그때는 버스도 안 다니고 길도 이렇게 포장되지 않았을 텐데. 진짜 옛날 스님들은 경공술이나 축지법을 쓸 줄 아셨던 거 아닐까? 

미션 완료했으니 이제 다시 여수 시내로! 

 

 

교동시장 포장마차 거리. 원래는 좌수영음식문화거리로 갈까 했는데, 블로그를 보다가 이 곳을 발견해서 급 목적지를 바꿨다. 라떼는 종종 볼 수 있었던 개천. 지금은 다 복개천으로 바뀌어서 깔끔해졌는데, 어린 시절 개천에서 놀던 생각이 가끔 나곤 한다. 동네 언니 오빠들이랑 놀다가 저 드런 곳에 신발도 빠지고 그랬더랬지 ㅋㅋ 요즘 아이들은 보면 아마 기겁하겠지? ㅎ 내가 또 포장마차도 좋아하는데 혼자 포장마차에서 소주 마시는 로망도 있었다.(로망부자 ㅋㅋ)

 

 

갑자기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아무 포장마차나 들어갔다. 20번 포장마차였나? 여긴 다 포장마차마다 번호를 붙여놓더라. 암튼 소주는 싫어하지만 포장마차에서는 소주를 마셔줘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 잡힌 나는 소주를 시켰고, 기왕이면 여수에 왔으니까 여수밤바다 소주를 시켜줬다. 맛은 머 소주 맛. 두 잔도 못 마신듯. 쏘주는 역시 노노. 도수가 16.9%인가 그랬던 거 같은데, 소주 도수가 진짜 많이 낮아졌구나 싶다. 라떼는 말야...ㅋㅋㅋ

 

 

딴 거 시킬까 하다가, 그래도 여수에서는 해물삼합이 대표 메뉴인 것 같아서 주문해봤다. 다 못 먹을 것 같은데...는 무슨 ㅋㅋ

 

 

혼자 온 내가 안쓰러워서였는지, 원래 그런지는 몰라도 포장마차 이모가 맛있게 구워주심.

 

 

삼겹살, 갓김치, 산낙지 그리고 소주와 함께 뙇! 맛나다. 맛나긴 한데, 너무 아는 맛이다. ㅋㅋㅋ 이모한테 혼자 다 못 먹을 것 같아서 밥은 안 볶을래요 했지만, 삼겹살 몇 개 남기고 다 먹어줬다. 밥도 뽂아먹을 수 있었지만 이미지 관리상? 안 먹어 줌. ㅋㅋㅋ

아주 배부르게 먹고 숙소로 복귀했다. 좀 더 시내 구경하고 싶었는데 다음날 한파가 온다더니 바람이 엄청 불어제껴서 얌전히 숙소로...역시 바닷바람은 만만하게 봐선 안된다. 이틀 있었는데 얼굴이 땡기기 시작.

 

 

얌전히 숙소에서 일찍 취침하고. 언젠가부터 여행가면 일찍 자는(일찍 일어나진 않음) 건강한 습관을 갖게 됐다. 다음날 아침. 냥이가 안 보인다. ㅠㅠ 집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스케줄인 오동도 산책하러 고고!! 동백꽃 군락지가 있다고 해서 꼭 가보고 싶었다. 

 

 

오동도로 들어가기 위해 걸었던 방파제 길.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바람이 엄청났다. 그래도 덕분에 저런 멋진 구름도 찍히고. 햇살도 꽤 좋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떨어진 온도로 동백꽃 군락지에서는 동백꽃의 붉은 잎은 구경도 못하고.

 

 

시간이 없어서 힘들어도 가파른 길로 동백꽃 군락지로 갔는데, 거기선 허탕 지고 옆에 편안한 길에서 드디어 붉은 동백이를 만났다. 이러기야? 예쁘게 핀 애가 없어서 헤매고 헤매다 찾아낸 아이. 정말 전형적인 동백이다. 예뻐라!! 

 

 

오동도 바닥에 있는 동백꽃 보도블록. 좀 더 예쁘게 안 되겠니? 경주의 천마총 보도블록처럼 좀 멋지 해주라.

오동도까지 계획했던 모든 스케줄을 끝마치고 숙소에 가니 딱 공항 갈 시간이 됐다. 딱딱 맞아떨어지는 시간.

 

 

이건 왜 찍었냐면, 버스 탈 때마다 느꼈던 여수시의 잘 정비된 버스정류장이 인상 깊어서. 버스 도착정보도 아주 잘 나오고 특히 아래에 버스카드 잔액조회 가능하게 해 놓은 것은 참 좋은 아이디어다 싶었다. 여수가 생각보다 잘 정비된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고, 서울처럼 인간이 너무 많아서 북적이지도 않아 꽤 좋다는 인상을 받았다.

tmi로 여수에서 버스 탈 때 유의할 점은 탈 때, 내릴 때 확실히 액션을 취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ㅎ 버스에 타고 내리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버스기사 분들이 대충 지날 칠 때가 많아서 못 내리고 못 탈 뻔한 적이 있었음.

일자리만 있다면 이런 적당히 잘 발달된 도시에서 살고 싶다. 서울 사람들보다 지방도시 사람들이 시간을 더 알차게 쓴다는 생각도 들었다. 서울, 경기도 사람들은 1시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매일 출퇴근하며 사느라 자신을 위해 쓸 시간이 없는데, 여수에서는 그런 삶이 아니라니까. 길에서 낭비되는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쓸 수 있으니까. 훨씬 시간 부자, 풍요로운 시간을 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 보니까 여수시는 재난지원금도 25만 원 준다면서? 서울보다 낫네 나아.

집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이상한 애 만난 거 말고는 아주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역시 여행은, 특히 혼자 하는 여행은 인생에 꼭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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